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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살이 9kg 가까이 빠지고 어지러움을 느끼는 빈도가 증가했다. 갑상선의 문제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검사를 받기로 일단 마음만 먹었는데, 어제 갑자기 심장이 빨리 뛰고 손이 떨리기 시작해서 오늘 검사를 받았다. 피를 뽑았고 결과는 2, 3일 뒤에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차라리 갑상선의 문제였으면 좋겠다. 원인이 명확하다면 치료를 받고 나아지면 될 일이니까. 원인을 몰라서 답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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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id19 때문에 일이 불안정해졌다. 오늘은 유독 그랬다. 9시에 출근해서 10시에 퇴근했다. 뭐하러 출근했나 싶어서 약간 우울해졌다. 회사를 나오는데 오늘 남아있는 시간이 너무 길어서 아득해졌다. 뭘 해야 하지, 어디에 가야 하지, 그런 생각이 들어서 막막했다. 집에 가고 싶지는 않은데 그렇다고 밖을 돌아다니고 싶지도 않았기 때문에 그냥 길에서 좀 울고 싶어 졌다.
병원을 바꿨다. 새로 바꾼 병원에서 새로운 방식을 권했다. 12시간짜리 약을 복용하고 그 이후에 4시간짜리 약을 복용하는 식인데 나는 이 방식이 아주 마음에 든다.
저녁 즈음 친구를 만났다. 상수역 근처에 있는 심야식당에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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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했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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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조깅을 했다. 지난주에 뛰었을 때는 힘들어서 죽을 것 같았는데 이번에는 의외로 그렇지 않아서 신기했다. 설마 일주일 동안 퍼포먼스가 이렇게까지 좋아졌을 리는 없고, 뭔가 다른 이유가 있을 것 같았는데 왔던 길을 되돌아 가면서 알았다. 바람이 뒤에서 불어온 탓이다. 돌아가는 길에 마주한 맞바람이 강력했다. 그래도 아주 조금은 몸이 좋아진 것 같다. 맞바람을 맞으면서도 이전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확실히 러닝 메이트가 있으니 좋다. 혼자 뛸 때는 마음대로 200미터를 뛰고 300미터를 쉬는 식이었는데 누군가와 함께 뛰니까 페이스를 조절하게 된다. 400미터를 달리고 다시 심박수가 안정될 때까지 쉬고, 다시 450미터를 달리고 쉬고, 이런 것들이 가능해졌다. 조금 더 욕심을 내자면 두어 명 정도 러닝 메이트를 더 구하고 싶다.
카페에 와서 영어공부를 했다. 코로나 덕분에 모든 일정이 뒤로 밀려서 지금은 혼자 공부할 수밖에 없다. 영어는 평생 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영어를 아주 못했기 때문에, 지금은 영어로 뒤덮여있다. 지금 일기를 쓰면서도 이 문장은 어떻게 영어로 쓰는 것이 좋을지 생각한다. 근래의 즐거운 일을 줄 세우라고 한다면, 맨 앞에 영어 공부하기 카드가 있을 거다. 공부가 취미가 될 수도 있고, 즐거운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기지 않는다. 매일 새로운 표현을 배우고 그걸 응용하는 게 즐겁다. 트위터에 배운 표현을 사용해서 바로 트윗하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순기능이다.
검사 결과가 나왔다. 아무 문제없다고. 어지러움의 원인이 뭘까? 심하면 경련까지 일어나는데 원인을 알 수가 없으니 답답하다. 전화를 준 의사에게 지난번에 받으려고 했던 검사에 대해 물었다. 의사는 꾸준히 운동을 하고 달릴 때 큰 문제가 없다면 트레드밀에서 운동 검사를 하더라도 큰 문제는 없을 거라고 말했다. 문제가 없는데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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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욕이 없다. 뭔가 조금씩 마시는 것은 괜찮은데 뭘 씹어 넘기고 싶지가 않다. 지난주 목요일에 잠깐 앉아있을 곳이 필요해서 들어갔던 스타벅스에서도 도저히 마시고 싶은 음료가 생각이 안 나서 한참 고민하다가 망고 주스를 샀다.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으면서 마실 생각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먹고 싶지 않아서 그냥 가방에 뒀다. 그걸 지금에서야 마신다. 저녁까지만 해도, 아마도 약을 먹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분명히 떡볶이가 먹고 싶었는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뭔가 먹고 싶은 생각이 전부 사라져 있었다. 이럴 것 같아서 모두에게 '오늘은 꼭 그걸 먹겠다!'라고 미리 말해뒀지만 결국 아무래도 못 먹을 것 같다고 번복했다. 갑상선에도 문제가 없고, 심장에도 큰 문제가 없는 거라면 결국 먹는 것의 문제인데 단순히 식욕이 없다는 이유로 이렇게까지 살이 빠질 수도 있다는 게 좀 믿기지 않는다. 식욕 부진 가능성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나름대로 챙겨 먹었는데 부족한가 보다.
writing 수업을 받았다. 시간을 조금 더 내서 글을 더 많이 써야겠다. 조동사와 시제를 활용해 특정한 뉘앙스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무 제약 없이 그걸 변형시켜서 활용하고 싶은데 아직은 어렵다. 감이 오긴 하지만 아직 완전히 내 것은 아니다. 전치사도 조금 더 공부가 필요하다 on이 와야 하는 곳에 for을 쓰거나 아무것도 오지 않아도 되는 곳에 to를 쓰는 실수를 좀 더 개선하고 싶다. 책을 읽을 때는 수식을 따라가다 보면 문장이 조금만 길어져도 내가 무엇을 읽고 있었는지 잊게 된다. 정보를 읽는 순서대로 머릿속에 쌓고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중간에서 조직화 과정을 거쳐서 그런 것 같다. speaking은 이제 시작이다. 일단 말할 기회를 더 많이 확보해야 할 것 같아서 새로운 방식을 알아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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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했다. 어제 너무 힘들어서 오늘도 그럴까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약을 좀 많이 먹고 잤더니 수면 시간도 꽤 괜찮았고 컨디션도 좋다.
인터뷰를 마쳤다. 글로 쓸 때는 절대 하지 않을 실수를 말로 할 때는 엄청 한다. 나중에 녹음본을 받아 보면 내가 저렇게 틀렸다고? 싶을 정도로 엉망이다. 뭐 원래 말하기가 그런 거니까 익숙해지면 괜찮아질 거다. 다른 코멘트들이 많았지만 일기에는 이 문장을 옮겨 두고 싶다. ‘It seems that you have experience communicating to foreigners, there is no tension, fear and you don’t get nervous while speaking.’ 이 부분과 ‘The student should focus on enhancement of intonation, pronunciation, stress and accent. You speak clearly and deliver your speech in a good manner.’ 이 부분이다. 이거면 됐다. 나머지는 고치면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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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럭저럭 일을 끝내고 퇴근했다. 애플 펜슬이 고장 나서 수리센터에 들러야 했다. 지도에 있었던 센터로 갔더니 수리센터가 아니라 엄청나게 조용한 일반 사무실이었다. 내가 삼 분간 입구에서 멍 때리는 동안 아무도 나를 발견하지 못했다. 제대로 찾아간 수리 센터에서는 애플 펜슬은 부품 수리가 불가하다는 말을 해줬다. 무상 교체 외에는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이 없어서 새 펜슬을 받을 때까지 3-4일 정도 기다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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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평소보다 많았는데 지루한 것 빼면 견딜만 했다. 오늘은 좋은 피드백을 많이 들었다.
애플 펜슬 3-4일 걸린다고 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오늘 찾으러 오라는 문자가 왔다. 새로 받은 펜슬은 작동이 잘 된다. 걸어갔다.
지루해서 미칠 것 같다. 사람들이 삶을 어떻게 견디는지 궁금하다. 지루하면 다들 뭘 하는지 알고 싶다. 그냥 지루한 채로 있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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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을 빨리 했다. 멈춰있는 기분이다. 복잡하고 흥미로운 계획이 있는데도 그냥 죽고 싶다. 면허가 있으면 가능할 것 같다. 그때는 면허도 없고 자차도 없어서 무엇이든 할 수 없었는데, 이제 자차가 필요 없는 시대니까 면허만 있다면 가능할 거다. 매일 다음을 위해서 공부를 하면서도 결과적으로는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 게 스스로도 이상하게 느껴진다.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냥 기분만 그런 걸까. 아니면 그냥 병증인가. 잘 모르겠다. 즐거운 게 있는데 그래도 죽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끌어안고 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 생각 없이 살고 싶은데 왜 나는 그게 안 될까. 지금보다 더 멍청해져도 괜찮으니까 그냥 그런 인간이 되고 싶다. 그러면 주어진 일에 집중하면서 그럭저럭 살 수 있을 텐데. '그럭저럭' 사는 것조차 안된다니 솔직히 좀 억울하다.
타인에게 우울한 마음을 알리는 게 싫다. 그냥 내가 기질적으로 우울한 인간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는 게 너무 싫다. 사실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다 하고 그냥 울고 싶은데 그 우울을 받아낼 상대를 생각하면 도저히 그럴 수가 없다. 결국 나를 어떻게든 챙겨서 가야 하는 사람은 나 뿐이다. 대화를 할 수도 위로를 건넬 수도 없는 사람과 끝없이 걷는 기분. 속이 완전히 비어버린 기분이다. 온통 장기만 들어찼다. 이제는 울고 싶지도 않다. 어차피 위로를 받을 수 없어서 혼자 뚝뚝 울다가 다시 걸어야 하는 거라면 그냥 울지 않는 편이 낫다. 나도 내가 가지고 있는 절망과 우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그래서 그냥 죽고 싶은 것 같다. 그러면 그 마음이 같이 죽어버릴 것 같다. 내가 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을 알고 싶다. 살아있는 게 형벌 같아서 더는 견딜 수가 없다. 그냥 자고 싶다. 오늘은 그냥 약 먹고 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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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뛰었다. 우울하고 죽고 싶을 때는 뛰는 게 최고다. 7.8km 정도 뛰었다. 여의도 한 바퀴다. 중간에 러너스 하이 비슷한 걸 조금 맛봤다.
친구들에게 아주 중요한 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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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만났다. 나는 이 친구를 굉장히 좋아하기 때문에 사실은 좋은 모습만 보여주고 싶다. 하지만 약발이 5시쯤 끝났고 최근 좋지 않았던 상태로 돌아갔다. 잘 하려고 하는 일은 언제나 잘 안 된다. 슬프고 친구에게 미안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은데 그런 게 잘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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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겨서 울었다. 세 시간을 울다가 멍청한 표정으로 있다가 다시 울기를 반복했다. 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는데 불가항력이었다. 엉망으로 울었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무슨 생각이 들면 우울한지 묻는 질문에 도저히 이제는 죽고싶다는 말을 대답으로 할 수가 없어서 내가 너무 싫다는 말로 대신했다. 내가 우울한 마음으로 사람을 대할 때,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도 그 기분이 전이되는 것 같아 아무말도 할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더는 우울을 감당할 수 없다고 그래서 너무 힘들어, 그냥 자고싶어, 그만 하고 싶어 줄줄 말했다. 차마 그냥 죽고 싶다는 말을 할 수는 없어서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이미 울고있는 것만으로도 미안한 마음인데 죽고 싶다는 말로 칼을 꽂을 수는 없었다. 이미 수많은 칼이 있는데 마지막 남은 한 자리에 남은 칼을 밀어넣을 수는 없었다. 내가 싫다는 말에 나는 네가 자랑스럽다는 말이 돌아왔다. 믿을 수가 없었다. 그 말을 믿지 못하게 된 시점부터 병에 걸린 거다. 이 모든 것은 병 때문이다, 이 생각을 안겨서 계속 했다. 나는 잘못이 없다고. 자랑스러운 사람인데 다만 병에 걸려서 다친 거라고 계속 생각했다. 어제는 많은 사랑을 받았다. 실컷 울고 나니 그동안 내가 밀어냈던 사랑이 보였다. 커다란 사랑을 잔뜩 짊어진 엄마가, 아빠가. 그걸 하나도 받지 않고 밀어낸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