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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xt 2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 최진영

문학을 읽지 않게 된 것은 고등학생 때의 일이었다. 그즈음 나는 사람이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는데 그건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당시의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진심 어린 고백이었다. 인간에 대한 혐오가 정점에 있었을 때, 나는 드디어 스스로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어떤 대상에 대해 공들여 말하는 것은 그 대상을 가슴속 깊이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다. 따라서 어떤 대상에 대해 깊은 사유를 바탕으로 몇백 페이지에 달하는 글을 쓴다는 것은 결국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있다는 절절한 고백이 된다. 사람이 싫었을 때, 나는 문학을 멀리했다. 인물을 사랑할 수 없어서 책을 읽지 않았고 타인에 대해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그래도 일기는 계속 썼다. 그때의 나는 스스로를 미워하는 동시에 어떻게든 사랑하려 애썼다.

 

마지막까지 쓰는 힘을 잃지 않는 사람들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는 사람이다. 글 안의 단어가, 문장이, 구성이 냉소로 덮여있을 때조차 소설의 본질은 결국 삶과 사람에 대한 관심이자 사랑이다. 행간에 흥건한 사랑을 마주할 때면 나에게도 비슷한 마음이 생겨난다. 최진영의 <당신 옆을 스쳐간 그 소녀의 이름은>은 나에게 그런 책이다.


세상을 가짜, 혹은 진짜로 양분할 수는 없다. 이 사실이 소녀의 독백을 읽는 나를 슬프게 만든다. 세상은 어떤 측면에서는 전부 가짜고, 한 발짝 옆으로 가면 모두 진짜다. 가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한순간에 진짜가 되어버리거나, 언제나 가짜일 수밖에 없는 것들이 만인에게 대체 불가한 진짜로 여겨지기도 한다.

 

소녀는 진짜 엄마를 찾아 지금의 ‘나’와 다른 진짜 ‘나’를 찾고자 한다. 이는 소녀의 욕망이자 서사의 원동력이다. 삶은 결국 내가 누구인지,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인지 끝없이 고민할 때 만들어지는 힘을 동력으로 굴러간다. 삶을 사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소녀와 같은 종류의 욕망을 갖고 살지만, 태어날 때부터 이름이 부여된 사람으로서 소녀가 가진 욕망의 크기를 가늠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소녀와 관계를 맺는 객체의 진위는 계속해서 바뀐다. 가짜로 판명된 사람들이 소녀 안에서 불타는 일이 반복된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만 사는 동안 가짜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모조리 태우기만 하면 마지막에 남는 것은 불쏘시개를 든 자신일 것이다. 아이는 끝에 가서 자기 몸에 불을 지르게 될까, 아니면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게 될까. 소녀는 끝에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린다.


 

 

아이는 처음에 세웠던 ‘진짜’ 엄마의 조건을 야금야금 고치면서 자라다가 완전히 무너뜨린다. 소설의 동력으로 작용하던 욕망은 끝에서 극단적인 방식으로 폭발한 뒤 연소하고, 서사도 마무리된다. 현실과 닿아있는 소설은 책을 덮고 난 다음에도 이야기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이름 없는 소녀의 진짜 이름을 생각하다가 답하기 어려운 현실의 질문들이 잔뜩 떠올라서 막막해졌다. 왜 아이는 항상 자신과 같은 부류의 사람에게 발견되는 것일까. 이미 불에 타버린 사람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을까. 아이를 스쳐가며 이야기의 프레임 바깥으로 나가버린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세상에서 가짜인 것들을 하나하나 지워낸 다음 스스로의 진위마저 고민하게 되더라도 자신이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의심의 여지없이 진짜다. 소녀의 옆을 스쳐간 사람들도 그런 측면에서는 불에 타지 않는 진짜로서 자신의 삶을 살아갈 것이다.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태워도 불타지 않는 사람들 사이에서 앞으로 소녀가 하게 될 선택이 어떤 것인지 알 수는 없으나, 스스로에게 불을 지를 만큼 힘든 삶은 아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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